24.05.07 10:36최종 업데이트 24.05.07 1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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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30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의 유니언 스테이션에서 무소속 대통령 후보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가 연설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4월 27일, 미국의 <뉴욕타임스>는 핵심 지지층이 겹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자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무소속 후보인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에 대한 공세를 날카롭게 펴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가 케네디를 가리켜 "바이든을 돕기 위해 민주당이 심어 놓은 급진적 좌파주의자"라고 비난했다는 것이다.

같은 날,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도 무소속 케네디에 표를 주는 것은 바이든 정부를 향한 항의 표를 낭비하는 것이라며, "나라면 차라리 케네디 대신 바이든을 찍겠다"라고 한 트럼프의 말을 소개했다.


트럼프가 비판한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는 미국의 35대 대통령인 존 F. 케네디의 조카이자 이전 법무부 장관 로버트 F. 케네디의 아들이다. 환경문제 변호사였던 그는 지난해 민주당 경선에 뛰어들어 바이든에 도전하면서 대선 레이스를 시작했다. 6개월 후에는 무소속 후보로 대선 출사표를 던졌다.

케네디는 녹색 뉴딜정책을 지지하고 화석연료 사용을 제한해야 한다는 좌파 선호 환경정책을 후원했다. 외교적으로는 러시아에 맞서고 있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거부해 민주당 주류와 대립각을 세우면서 트럼프를 포함한 다수의 우파들과 더 가까운 관계를 맺었다. 오랜 기간 백신에 대해 회의론을 폈으며 코로나바이러스로 팬데믹이 일어나자 백신 의무화와 봉쇄 조치에 반기를 들기도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트럼프는 이런 케네디를 러닝메이트로 삼아 이번 대선 경쟁을 꾸려가고자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두 이름이 갖는 브랜드가 합쳐졌을 때의 정치적 잠재력을 기대한 셈이다. 트럼프는 '트럼프-케네디'라는 어감이 듣기 좋다고까지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민주당의 유산을 지닌 케네디가 트럼프와의 한솥밥을 고려하지 않고 무소속 후보로서 바이든과도 대립각을 세우자 바이든과 트럼프 양측의 분위기가 급속도로 가라앉았다. 케네디 역시 바이든과 트럼프 모두의 당선에 지장을 주는 방해꾼으로 스스로를 자리매김하면서 존재감을 과시하기 시작했다.

한때는 트럼프가 케네디의 캠페인을 지지한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내심 케네디가 바이든의 표를 뺏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그가 대선 경쟁에 뛰어든 것이 너무 좋은 일이라고 언급했다. 민주당 출신의 무소속 케네디가 자신이 바이든을 이기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 것이다.

케네디가 민주당 경선에서 바이든에게 도전했을 때, 트럼프는 그가 아주 현명한 사람이며 어떤 면에서는 자유주의자라고 추켜세웠다. 그러나 케네디가 흡수하는 유권자층이 트럼프나 바이든에게 똑같이 악재가 된다는 여론조사를 확인한 후부터 입장이 달라졌다. 

공화당의 염려, 민주당의 견제

한 대학이 실시한 설문조사를 보면, 대선후보 양자구도에서는 케네디 지지자들이 트럼프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응답자의 47%가 트럼프를 선택했고 바이든을 선택한 사람은 29%에 불과했다. 제3당과 다른 무소속 후보를 포함한 5자구도에서는 트럼프와 바이든이 37%의 지지로 묶여 있었지만 케네디는 16%의 지지를 얻었다.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양자구도에서 바이든 51%, 트럼프 48%로 팽팽했지만, 케네디를 포함한 5자구도에서는 바이든 43%, 트럼프 38%, 케네디 14%로 나타났다. 특히 무소속 후보들 사이에서 바이든의 지지율은 거의 변화가 없지만(33%에서 34%로 소폭 상승) 트럼프의 지지율은 대폭 하락했다(38%에서 30%로 하락). 반면 케네디의 지지율은 이전 21%에서 27%까지 상승했다. 

NBC 여론조사에서는 양자구도에서 바이든 44%, 트럼프 46%로 나타났지만 5자구도에서는 바이든 39%, 트럼프 37%, 케네디 13%의 순이었다.
 

지난 4월 12~16일 미국 NBC가 미국 등록 유권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선후보 여론조사(오차 범위는 ±3.1%P)를 보면 양자구도에서 바이든 44%, 트럼프 46%로 나타났지만 5자구도에서는 바이든 39%, 트럼프 37%, 케네디 13%의 순이었다. ⓒ NBC

 
무소속 케네디가 바이든의 유권자를 빼앗아 가는 존재이면서 동시에 트럼프의 표를 가져가는 위협이 되자 공화당의 염려가 커졌다. 공화당원들은 케네디가 자신들의 지지기반도 쉽게 무너뜨릴 수 있다는 현실에 눈을 뜨고 있다. 

지난 3월 27일 트럼프는 케네디를 두고 바이든을 위해 대선판을 망치려고 위장한 진보적 민주당원이라 불렀다. 기후변화와 환경문제에 있어 케네디의 생각이 바이든보다 훨씬 더 급진 좌파적이라고도 지적했다.

이에 대해 케네디는 "겁먹은 사람들이 소셜미디어를 이용하면 폭언을 하기도 한다"라면서 "트럼프가 나에게 폭언한 것은 미국 대선 토론 전통에서 꼭 고쳐야 하는 거칠고도 부정확한 주장"이라고 일침을 놓았다.

민주당도 트럼프 지지기반이 바이든 지지기반보다 더 견고하다고 보기에, 제3당과 무소속 후보들의 바이든에 대한 위협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민주당은 케네디 대선캠프를 '방해꾼'이라고 주장하고, 바이든 지지자들은 케네디의 견해가 자유주의의 가치에서 벗어나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몇 개월 동안 민주당원들은 케네디가 선거에 미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해 공개적으로 경고하고 민주당 전국위원회는 제3당 및 무소속 후보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작전을 준비하기까지 하는 등 '배신자' 케네디에 대해 방어적인 태도를 취해왔다.

여기에 전통적인 민주당 지지기반인 케네디 가문도 가세했다. 지난 4월 24일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케네디 가문이 케네디의 대선 출마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가 무소속 출마를 선언하자 민주당에 뿌리를 둔 케네디 일가가 바이든의 재선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예상한 것이다.

이들은 지난 4월 18일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마틴 루터 킹 레크리에이션 센터에서 열린 조 바이든 대통령 유세에 참석해 바이든을 지지한다고 밝혔고 이는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에 대한 '질책'으로 받아들여졌다. 

<뉴욕포스트>는 전 하원의원 조셉 케네디 2세가 자기 동생이 대선에 나서는 것을 보고 "그런 식으로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투표용지에 케네디 이름이 오르면 민주당원들은 심란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케네디는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자신의 대선 행보가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에 더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들의 염려를 일축했다. 케네디는 '자신의 가문이 정치적으로 살아있어 기쁘다'고 밝히면서 '의견이 갈렸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연합되어 있다'며 가족애를 강조했다.
 

지난 4월 18일(현지시간)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필라델피아의 마틴 루터 킹 레크리에이션 센터에서 열린 조 바이든 대통령 유세에서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의 여동생인 케리 케네디가 케네디 가문의 바이든 지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케네디 가족의 바이든 대통령 지지는 무소속으로 대선에 출마한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에 대한 '질책'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연합뉴스

 
케네디가 트럼프에게 더 타격을 주는 이유

민주당이 불편한 것은 케네디라는 이름이 가져오는 수혜 덕분에 무소속 후보로서는 꽤 입지가 강한 여론조사 지지율을 얻는다는 점이다. 공화당 입장에서는 잃을 것이 더 많다. 케네디가 트럼프와 겹치는 것은 일부 정책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이든에게 기부했던 사람들보다 트럼프에 기부했던 사람들이 케네디에 훨씬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폴리티코>의 분석에 따르면 지난해 여름 출범한 케네디 캠프가 모금한 2270만 달러(313억 원) 중 거의 170만 달러(23억 원)가 지난 대선 트럼프 캠프에 기부했던 1700명의 기부자에서 나온 돈이다.

이와 비교해 보면 지난 대선 바이든 캠프에 기부한 사람들 가운데 케네디에게 기부한 금액은 980명에서 나온 85만 달러(12억 원)에 불과했다. 트럼프에 관심을 보이는 이들 가운데 케네디에게 호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보여주는 데이터이다.

한 공화당 컨설턴트는 '트럼프 캠프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지 않으면 망상에 빠진 것'이라며 '특히 트럼프의 정책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있는 제3당 후보는 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다.

그렇다면 대선 경쟁에서 케네디가 트럼프에게 더 타격을 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폴리티코>는 '스스로를 반기득권 정치를 대표한다고 보는 트럼프 지지자들에게 케네디는 트럼프와 공통된 점을 공유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라면서 '트럼프에게 표를 준 백신회의론자들을 케네디가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으로 보았다.

한 공화당 전략가는 케네디가 지닌 두 가지 장점에 대해, 민주당에 족보를 둔 케네디라는 성이 바이든 외 다른 선택을 갈망하는 민주당 유권자들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면서도, 백신에서 자폐증에 이르기까지(소아 백신이 자폐증의 원인이라는 주장) 좌파들보다는 우파들에게 더 먹힐 수 있는 광범위한 아이디어가 케네디에게 많이 있다고 지적했다.

케네디 캠프는 흑인 유권자 지원 활동을 담당한 트럼프 캠프 출신을 영입하고 백신 반대 비영리단체 운영자를 커뮤니케이션 담당자로 임명하는 등 트럼프 지지자들을 끌어들일 준비에 여념이 없다. 또한, 케네디는 최근 CNN 인터뷰를 통해 트럼프보다는 바이든이 민주주의에 더 큰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 자신을 부각시키는데 집중하고 있다.

케네디 가문의 눈 밖에 난 미운 오리 새끼가 미 대선판을 뒤흔드는 미꾸라지가 될 것인가? 무소속 로버트 F. 케네디 주니어의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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