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5.07 11:59최종 업데이트 24.05.07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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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문재인 정부 국정운영 참여자들의 모임인 <포럼 사의재>와 함께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윤석열 정부를 집중 진단합니다. 윤 정부 2년의 역사적 퇴행을 바로잡고 정책을 복원해 대한민국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자 공동기획을 마련했습니다. 총 열 편의 글을 게재할 예정이며, 이 글은 그 첫 번째로 '총론'입니다.[편집자말]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발전한 유일한 국가, G7 진입을 목전에 둔 신흥강대국, 교민들이 한결같이 칭송하던 최고 수준의 의료서비스체계. 불과 2년 전 한국이 받던 평가였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2년 동안 일어난 반전은 극적이다.

국격과 국민들의 자부심을 밑바닥까지 실추시킨 요란한 빈수레 외교 행렬, 시대오판의 대외정책으로 쪼그라든 경제영토, 법의 지배 대신 법에 의한 지배로 나타난 검찰의 법치주의 능멸, 치솟는 식품가격으로 식단을 줄여야만 하는 서민들을 헛웃음짓게 한 '합리적'인 대파가격과 물가정책, 참다운 군인을 항명수괴죄로 몰아가는 군통수 형태, 행정관리 1등국가 긍지를 단번에 박살낸 새만금 잼버리 행사준비, 필수의료 확보와 지역 간 의료격차 해소를 바라는 국민의 뜻과는 상반되게 전개되는 치졸한 의정갈등 관리.


사회 전 분야에 나타나고 있는 거대한 퇴행, 침몰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 위상이다.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되어 대한민국이 총체적으로 무너지고 있는 것일까?

보이지 않는 옷, 견강부회의 억지 정권
 

윤석열 대통령이 4월 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인사브리핑에서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국민의힘 정진석 의원을 소개하기 위해 단상에 오르며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 대통령, 정 신임 비서실장, 이관섭 현 대통령 비서실장. ⓒ 연합뉴스

 
안데르센 동화 <벌거벗은 임금님>은 아첨꾼으로 둘러싸인 어리석은 군주 이야기다. 평소 사치와 호화로움을 좋아하던 임금님은 왕실 재봉사가 만든 '눈에 보이지 않는 옷'을 걸치고 당당하게 행차에 나선다. 주변 아첨꾼 신하들은 앞다투어 옷에 대한 칭송을 늘어놓는다. 가볍고, 찬란하고, 멋지다고. 그러나 멀리서 이 모습을 바라본 순박한 아이와 대중의 눈에는 아무 옷도 걸치지 않은 임금님의 불룩한 배, 허접한 가슴살만 보인다.

"임금님은 벌거벗었다!" 아이들은 본 대로 외친다. 동화는 거기까지. 만약 안데르센이 지금의 한국에서 살았다면 동화의 마지막을 입틀막으로 맺었겠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최고의 옷'을 걸쳤다고 거들먹거리지만 대중의 눈에는 허접하고, 볼썽사납고, 허망한 모습만 보인 임금님. '과학기술로 나라를 발전시킨 대통령으로 기억되겠다'고 호기롭게 선언하지만 정작 국민은 R&D 예산삭감으로 첨단과학과 한국의 미래가 무너져 내리는 현실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있다. '민생안정이 최우선 과제'라던 '눈에 보이지 않은 옷'은 고물가에 신음하는 서민층의 아픔을 가려주지 못했다.

누군가 옷을 입지 않았다고 일러주고 드러난 몰골이 허접하다고 말해 주어도 되려 '눈에 보이지 않는 찬란한 옷'을 국민들이 알아보지 못한다고 억지를 쓰며 임금님은 격노한다. 집권 2년 간 임금님의 격노는 가까운 신하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여 더욱 열렬히 보이지 않는 옷에 대한 칭송을 늘어놓게 하지만, 몰골을 바라보는 국민에게는 조롱의 화젯거리를 더할 뿐이다.

찬란한 옷과 허접한 몰골. 두 소재 간에 공통점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 청중을 무시한 일방통행식 소통은 양쪽 모두를 지치게 만들고 정부의 권위는 추락하고 국가를 이끌어 갈 추동력은 나날이 식어가고 있다.

천대받는 법치주의, 소멸하는 사회적 자본
 

윤석열 대통령이 18일 서울 서초구 농협 하나로마트 양재점 야채 매장에서 대파 등 야채 물가 현장 점검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민주정치의 근간이 되는 법치주의의 요체는 소수 위정자의 의지가 아니라 국민의 의사를 담은 법이 통치자를 비롯하여 모든 국민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것이다. 이때 법치주의는 법에 의한 지배(rule by law)가 아니라 법의 지배(rule of law)를 의미한다. 국민의 의사가 아닌 위정자의 뜻을 담은 법을 집행하는 것은 법에 의한 지배는 되지만 법치주의는 아니며, 국민의 의사를 담은 법일지라도 특정 집단에게만 선택적으로 적용하는 경우에도 법에 의한 지배는 되지만 법치주의와는 어긋난다.

미국의 정치학자 퍼트넘(Robert David Putnam)은 민주주의가 효율적으로 작동하려면 사회적 자본의 형성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규범, 제도, 신뢰, 네크워크로 구성되는 사회적 자본은 개인의 행복감을 높이고 사회통합의 기반을 강화하며 경제적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인다. 규범, 제도, 신뢰의 근간이 되는 법치주의가 흔들리면 사회적 자본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그 사회는 발전의 원동력을 상실하게 된다.

윤석열 정부 2년 동안 고발이 난무하고 편파적인 감사와 수사, 기소가 끊임없이 이어지면서 법에 의한 지배는 횡행하지만 법의 지배, 법치주의가 천대받고 있다. 법집행의 공평성이 의심받게 되면서 국민들의 현재는 불안해지고 미래는 어두워졌다.

정부정책을 믿고 새 영역의 사업에 뛰어들었던 민간자본은 '이권카르텔'의 악마로 낙인찍히고, 정책추진에 헌신했던 공무원들은 수사보다 더 심한 감사에 시달리며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윤석열 정부의 권력기관들은 사회적 자본을 잠식시키며 국가발전을 가로막는 훼방꾼으로 변신하였다.

사회적 자본이 메말라버린 상태에서 모호한 정부정책에 떠밀려 마지못해 투자에 나서는 기업, 복지부동을 넘어 전전긍긍의 얼어붙은 관료, 비바람 몰아치는 황야에 내동댕이쳐진 소외감으로 불안해 하는 국민. 우리의 현재 자화상은 윤석열 정부 2년 간 한국사회가 잠재성장률에도 한참 못 미치는 저성장의 늪에서 왜 허우적거리고 있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준다.

뒤쳐진 시대인식, 조악한 대처능력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 2023년 11월 16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센터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회동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선진국 문턱을 넘어선 한국은 작은 목선이 아니라 격랑의 대양을 헤쳐가는 거대한 함정이다. 안으로는 양극화와 저출생, 지역격차의 구조적 문제를 풀어야 하고 대외적으로는 패권다툼의 세계경제질서 재편, 에너지와 산업체계의 전환, AI에 기초한 새로운 인류문명의 도래, 기후위기의 증폭 등 중첩적이고 복합적인 과제를 동시에 슬기롭게 해결해 나가야 한다. 눈짐작으로 목적지를 잡고 바람에 얹혀 가는 작은 목선의 허접한 항해술로는 대양의 거함을 운행은커녕 시동도 걸지 못한다.

국가와 시장, 공공과 민간은 19세기 자유주의시대처럼 단순한 대립 관계가 아니라 다양한 영역에서 대립과 협조, 지원과 경쟁을 벌이는 다층적 관계로 발전해 왔다. 그 결과 복잡다기한 현대국가에서 공권력은 단순히 통제기능에 머물지 않고 인프라 구축과 공공재 제공을 통해 국민의 기본삶을 보장하고 시장질서를 유지하는 주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공권력에 대립되는 개인 역시 현대 민주사회에서는 사적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면서 동시에 공동체의 번영을 위해 일정 부분 헌신과 협력을 아끼지 않는다.

사회구성원들의 복잡다기한 요구를 담아내는 세련된 가치체계를 논하는 상황에서 19세기적 자유개념을 내세우는 것은 뇌수술에 사용할 정밀한 메스를 찾는 의사에게 무딘 식칼을 사용하라고 억지를 피우는 격이다. 도구만이 낡고 뒤진 것이 아니다. 제대로 시술 경험을 쌓지 못한 초급자들이 각 분야에서 선무당처럼 마구잡이로 식칼을 휘두르며 환자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대한민국이 백천간두의 위험으로 몰리고 있다.

시대에 뒤떨어진 진영외교로 국가를 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넣고, 국민경제의 우선 순위를 도외시한 중구난방 땜질식 경제정책으로 서민에게 고물가의 절망을 안기고, 명예를 생명으로 여기는 진정한 군인에게 해괴망칙한 죄명으로 치욕을 안기며, 세계 최고의 의료서비스를 기대하는 국민에게 의료공백이란 당혹감으로 화답한 정부. 이 모든 국정 난맥상이 위정자의 시대에 뒤떨어진 의식수준과 조악한 상황 대처능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중간평가, 그리고 다시 일어서기
 

윤 대통령 용산 대통령실에서 취임 2주년 기자회견 윤석열 대통령은 오는 9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취임 2주년 기자회견을 연다고 대통령실이 6일 밝혔다. 사진은 기자회견 장소인 대통령실 청사 브리핑룸. ⓒ 연합뉴스

 
윤석열 정권 2년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지난 총선에서 간명하게 결론지어졌다. 108대 192. 상식 밖의 거듭된 실정과 폭정에 당혹해하던 국민이 내린 중간평가 점수다. 대학의 학점평가체계에 의하면 학사경고를 넘어 학사제명 언저리 수준이다.

국민의 평가는 일상의 경험에서 읽어낸 온갖 퇴행을 집단지성으로 인지하고 삭여낸 결과여서 매섭다. 그러나 엄중하지만 0점을 면한 평가 점수는 불량정권을 혁파하여 위기의 대한민국을 지켜내라는 국민적 의지도 담고 있다. 퇴행을 멈추고, 역사를 다시 세우고, 대한민국을 일으켜 앞으로 전진할 것을 명하고 있다.

앞으로 1년, 지금까지처럼 퇴행을 거듭하여 대한민국을 완전히 침몰시킬 것인지 아니면 그 동안의 잘못과 한계를 인정하고 과감하게 국정 전반을 혁파하여 열린 자세로 국민과 더불어 다시 일어날 것인지 모두가 지켜보고 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포럼 사의재 상암대표이자 전 보건복지부 장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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