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항상 그리운 까닭

어버이날을 맞아 글로 불러낸 어머니

등록 2024.05.07 09:14수정 2024.05.07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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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스케치 ⓒ 박정윤

 
어머니 가신 지 어느덧 8년이 지났다. 당신의 마지막 시간을 세 형제가 돌아가며 함께했다. 세상과의 이별 며칠 전까지도 나에게 "얼른 서울 올라가거라, 나 괜찮다" 하시며 자식 걱정을 하시던 분이다.


큰형과 교대하면서 차에 올랐다. 모친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기에 운전대를 잡자마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뒤에서 신경질적으로 경적을 울려대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면 도로에서 내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을 것이다.

의사는 마지막을 준비하라고 했지만 나는 어머니께 그 말을 전 할 수 없었다. 병원을 막 나서려는데 "나 일 년만 더 살았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피력하셨기 때문이다. 나는 '당연히 그러셔야죠'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하늘은 당신의 소망을 들어주지 않고 자연의 의지대로 뜻을 관철했다.

아버지와 헤어질 때는 커다란 보호막을 잃은 느낌이 들었다면, 어머니 가실 때에는 나라는 자신의 '근거'를 완전히 상실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2차로 탯줄에서 떨어져 나간 느낌이랄까?

나를 사랑한다는 말은 한 번도 해 준 적이 없지만 "밥은 먹었냐? 아픈 데는 없느냐?라고 묻는 말이 "나는 너를 사랑한단다"라는 뜻임을 알고 있었다. 혹시 형, 동생만 편애하는 거 아닌가 하고 슬쩍 물어보면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은 없단다"로 대신 답 했던 분!

자식들 입으로 음식 들어가는 모습을 보는 게 당신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었노라고 말씀하시곤 했었다. 대부분이 보리밥이었지만 자식들 그릇 한 귀퉁이에는 꼭 쌀밥 한 줌을 별도로 놓아주셨다. 당신 그릇엔 온통 꽁보리 밥! 그것도 절반밖에 차 있지 않았다.


철부지였던 나는 엄마는 원래 보리밥을 좋아하고 소식을 하는 줄 알았다. 오 형제  부양하느라, 시아버지 간병하랴, 막내 낳고 일찍 떠난 시어머니 때문에 젖먹이 시동생 건사하랴, 논밭일 하느라 몸이 열 개라도 부족했던 분인데 말이다.

당신의 속옷과 양말이 정상적인 경우를 본 적이 없었다. 기워 입고 자식들이 입던 옷을 입었다. 이제 우리가 취직도 하고 걱정 없으니 조금 가꾸면서 사시라 해도 옅은 미소만 지을 뿐 "동동 구루무" 외에는 발라 본 적이 없는 어머니다. 조그만 체구의 어머니 손은 많은 일을 해서 나의 것과 크기가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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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네이션 어버이날을 맞아 준비한 선물 ⓒ 박정윤


너무나 검약에 철저했던 어머니를 보고 자란 나는 지금도 병적일 정도로 전기 제품 스위치를 내리고 다닌다.  어느 날 야외 수도꼭지가 열려 있고 물이 콸콸 쏟아지길래 '아무리 내 것이 아니라도 이러면 안 되지'라고 중얼거리면서 수도꼭지를 돌리는데, 저 멀리서 왜 그걸 잠그느냐고 노발대발하는 사람이 있다. 수도관 시험 중이란다. '아! 이노무 오지랖, 어마이 때문에 내가 이 모양이라우!'

자식이라곤 아들만 있어 평소 삶이 팍팍하셨겠다고 말하면 이렇게 응답하시곤 했다. "딸이 있다가 없어졌다면 몰라도 처음부터 딸 좋은지를 모르고 살아서 그런지 아무렇지도 않다", "나는 충분히 행복했고 만족한단다".

초중등 시절 내가 어머니의 모진 삶을 조금이라도 어루만진 일은 땔감 준비, 설거지 돕기, 풋고추 찧기, 부엌 불지피기 정도다. 분가 후에는 부모님에게 약간의 생활비를 정기적으로 송금했지만 당신으로부터 받은 사랑에 비하면 이야기로 꺼내기도 부끄러운 일이다.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오직 베풀기만 할 뿐... 지난한 삶을 사시다 가셨지만 자식들 때문에 항상 행복했다는 사랑하는 어머니를 마음속으로만 그리다가, 어버이날을 맞아 글을 빌어 다시 불러내고 싶었다. 
#어버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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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기관 근무 후 퇴직 객관적인 시선으로 글을 쓸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카카오브런치에서도 수필 및 산문을 등재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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