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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훈 도지사님, 문제는 삼나무가 아니라 기후위기입니다

[주장] '제주 오름 삼나무 전량 베기' 등을 언급한 오영훈 제주도지사를 비판한다

등록 2024.05.07 12:02수정 2024.05.07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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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의회 도정질문에 답하는 오영훈도지사 . ⓒ 제주도의회 영상 갈무리


오영훈 제주도지사가 지난 4월 18일 제주도의회 도정질문에서 전국 1위인 19세 이하 아토피 유병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로 '오름의 삼나무 전량 베기'를 언급했다.

제주에서 유독 천대받는 삼나무

제주도는 삼나무가 가장 많이 자라고 있는 지역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삼나무를 가장 천대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2018년 도로 양 옆에 길게 뻗은 이국적인 풍경으로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던 비자림로 삼나무들이 도로확장을 위해 한꺼번에 1000그루 정도 벌목되자 많은 이들이 안타까워하며 벌목된 비자림로 사진을 퍼날랐다. 곧이어 벌목 중단을 요청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고 3만여 명의 시민들이 청원에 참여했다.

하지만 삼나무가 제주에서 알레르기를 유발한다는 기고가 언론에 올라오자 비자림로 도로 확장의 환경 파괴 논란은 갑자기 삼나무 논쟁으로 불똥이 튀었다. 비자림로 도로 확장을 찬성하는 이들은 삼나무가 일제 강점기에 유입돼 자생나무가 아니며, 꽃가루는 알레르기를 유발하기에 오히려 베어내어야 한다는 주장을 폈다. 베어야 할 나무를 도로를 넓히기 위해 베어낸 것이 무엇이 문제냐는 반응이 쏟아졌고, 일부 언론은 이런 주장을 인용해 보도하기도 했다.

삼나무를 천대하는 일부 인식을 가장 적극적으로 수용한 이는 오영훈 제주도지사일 것이다. 지난 4월 제주도의회 본회의에서 양병우 도의원이 "삼나무 자원화가 멈춰있는데, 산지 경영자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조례 제정도 적극 해줄 것"을 주문하자 오영훈 도지사는 "삼나무 꽃가루에 의한 감작율, 아토피와 알레르기 발병률"에 대해 언급하며 "제주도 공유재산 오름 몇 군데를 시범적으로 전량 베기나 부분 솎아베기 등"을 고민하고 있다고 답했다.

온화하고 습한 환경을 좋아하는 삼나무는 제주에서 쑥쑥 잘 자라나 '쑥대낭'이라고 불리운다. 1970년대 전국적으로 새마을운동 열풍이 불면서 집중적으로 나무 심기 사업이 진행됐다. 당시 제주도는 도민들을 동원해서 빨리 쑥쑥 자라는 삼나무를 제주의 많은 오름에 심었고 그 즈음 생겨나기 시작한 감귤 과수원에도 방풍림으로 심었다.

그 나무들이 이제 50년 가까운 수령의 나무들로 성장했다. 그렇게 난데없이 제주 땅에 뿌리를 내린 삼나무들은 이제 꽃가루로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대역죄인'인 데다 인공림이라는 이유로 천대받으며 베어질 운명에 처했다.


문제는 삼나무가 아니라 기후위기

과연 삼나무는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대역죄인일까?

2011년 대한소아알레르기호흡기학회지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제주에서 알레르기를 유발하는 항원은 집먼지 진드기, 삼나무, 실외 곰팡이류, 잔디꽃가루류, 귤응애 등이었다. 특히 가장 연관성이 높은 집먼지진드기는 25℃ 내외의 온도와 75~85%의 상대 습도에서 잘 자란다. 제주 지역의 높은 알레르기 유병율은 제주의 기후와도 밀접하게 연관이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 논문은 '온실 가스의 증가로 온도 상승 등의 기후변화는 대기 중의 알레르겐 농도 및 양을 증가시켜 알레르겐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많은 양의 노출 및 감작이 일어나 알레르기질환을 심화'시킴을 지적했다. 제주가 아열대기후로 넘어가면서 진드기뿐만 아니라 꽃가루 역시 발생시기와 양과 농도에 많은 변화가 생기고 이것이 곧 알레르기 질환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삼나무 꽃가루는 알레르기를 일으키는 여러 가지 요인 중 하나에 불과하며 기후위기로 인한 제주의 아열대화가 앞으로 더 큰 문제가 될 것이라는 의미다. 게다가 삼나무에서 다량 발산되는 피톤치드는 아토피에 오히려 긍정적인 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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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지기 전 비자림로 삼나무 . ⓒ 이홍우


생명의 나무, 삼나무

세계적인 식물학자이자 의학생화학자인 다이애나 베리스퍼드-크로거의 책 <나무를 대신해 말하기>에서 삼나무는 다음과 같이 묘사돼 있다.

"지저귀는 새들에게는 열매를 주고 유제류와 토끼에게는 푸른 잎을 내주는 삼나무를 선주민들이 '생명의 나무'라 부른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삼나무는 주변 생태계를 풍부하게 만들면서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

2018년 1000그루 가까이 벌목됐다가 많은 시민들의 분노로 중단됐던 비자림로 공사는 2019년 재개됐다가 다시 중단됐다. 비자림로에서 수많은 멸종위기종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었다.

2020년 제주대학교가 제주도의 용역을 받아 제출한 비자림로(대천~송당) 확·포장공사 소규모 환경영향평가협의 내용 이행에 따른 조사 용역 최종보고서'에 따르면 아래와 같은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비자림로 구간은 천미천, 거슨새미오름의 풍부한 수환경과 삼나무조림지가 높은 공중습도를 유지시켜 주는 생태환경으로 인해, 양치식물의 번식과 생장에 가장 이상적인 공간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 

비자림로 조사구간의 식물 다양성과 수많은 양치식물들의 출현은 단일한 환경의 곶자왈에 비해 천미천의 상록활엽수림과 삼나무조림지, 거슨새미오름, 칡오름, 송당목장 등 생태서식처의 다양함이 식물종의 다양성에도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으로 판단. 

특히, 3구간의 삼나무 조림지는 50여 종의 양치식물들을 관찰할 수 있는 핵심지역이므로 반드시 보존돼야 하며, 지속적인 모니터링이 필요.

제주도는 어디에서나 삼나무와 목장지대, 오름을 흔히 볼 수 있으나, 그동안 급속도로 파괴되어온 곶자왈 자연환경에 비해 주목받지 못해왔다. 비자림로를 시작으로 하여 제주도의 고유한 자연환경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깊어지는 기회."

 

또한 조류학자인 주용기 전북대전임연구원은 2019년 많은 법정보호종 조류들이 비자림로에서 발견됐을 때 "비자림로 숲에는 활엽수림과 삼나무림이 잘 우거져 있고, 땅 바닦이 지렁이가 살기에 아주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팔색조가 둥지를 틀기에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었다(관련 기사 : 비자림로에는 멸종위기종 '팔색조'가 살고 있습니다 https://omn.kr/1jj2t ). 사람들에 의해 심어진 삼나무는 어느새 제주도의 생태계를 풍부하게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원령공주>는 야쿠시마 섬을 배경으로 한다. 1000년 이상 수령의 삼나무 야쿠스키와 이끼들이 뒤엉켜 살고 있는 이 섬은 일본에서 첫 번째로 유네스코 세계 자연 유산에 등재됐다.

수령이 수천 년이 넘는 몇 개의 커다란 삼나무 숲이 뛰어난 자연미와 미학적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 독특한 수직 식생 분포를 가지고 있어서 생물학적 다양성 측면에서 중요하다는 점이 인정받은 이 섬은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생태관광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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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지지 않은 삼나무에 낀 이끼 . ⓒ 김순애

 
식물학자 다이애나 베리스퍼드-크로거는 "나무로 하여금 대기 중 이산화탄소를 충분히 흡수케 해 기후변화를 멈추려면 이미 지켜낸 숲에 더해 1인당 6그루, 대략 480억 그루의 나무를 더 심어야 한다"고 말한다.

시대적 흐름과 거꾸로 가는 오영훈도지사의 발언에 대해 어떤 이는 벌목업자와 조경업자와 연관되어있을지 모른다고 의심하기도 한다. 지나친 억측일까?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현재 제주녹색당 운영위원장입니다.
#삼나무 #비자림로 #오영훈제주도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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