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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이면 어김없이 가족톡으로 알림이 뜬다. 

"아빠는 이제 출발~"
"집 드가는 중"
"저녁 먹고 드가용"
"난 늦어요"


남편과 세 아이가 저녁을 먹고 오는지 아닌지 알리는 문자다. 오늘은 집에서 밥을 먹는 식구가 남편과 막내뿐이다. 그렇다면 남편과 막내가 좋아하는 위주로 밥상을 차려야 한다. 

우선 남편이 좋아하는 표고버섯을 저며 에어프라이어기에 돌린다. 그러는 동안 숙주를 씻어 냄비에 깔고 그 위에 샤부샤부용 고기와 다진 파를 얹고 참치액젓을 두 숟갈 두른 뒤 뚜껑을 덮어 가스레인지에 올린다.

다음으로는 막내가 좋아하는 참치와 김치를 버무려 프라이팬에 올린다. 참치와 김치가 자글자글 볶아질 동안 콩나물을 씻어 삶아서는 국물은 북엇국용으로 남겨두고 콩나물만 건져 고춧가루와 소금, 들기름, 참치액젓 두어 방울을 넣고 무친다. 여기에 만들어 놓은 우엉볶음과 멸치볶음, 오이양배추 절임, 파김치를 내어 놓으면 저녁 밥상 완성이다. 
 
숙주무침과 표고버섯은 남편을 위해, 참치김치볶음과 콩나물 무침은 막내를 위해 만들었다.
▲ 남편과 막내를 위한 반찬 숙주무침과 표고버섯은 남편을 위해, 참치김치볶음과 콩나물 무침은 막내를 위해 만들었다.
ⓒ 전영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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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혼시절에는 밥상을 차리는 데 꼬박 3시간이 걸렸다. 그러다 보니 6시에 퇴근해 집에 도착하면 9시를 훌쩍 넘겨서야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대단한 요리를 한 것도 아니었다. 밥과 된장찌개에 콩나물무침과 시금치나물, 그리고 샐러드에 동그랑땡. 그게 상차림의 다였다. 그럼에도 시간이 그토록 오래 걸렸다. 요리를 전혀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우스운 일이지만 당시에는 요리를 동시다발로 해야 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음식을 하나 장만하고 나면 다시 하나를 시작하는 식이었다. 사랑의 힘이 아니었더라면 그토록 오랜 시간을 투자해 저녁상을 차리지도, 배고프면 짜증이 솟구치는 남편이 화를 억누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1시간이면 뚝딱 밥상을 차려내는 신공을 얻게 되었다. 시간의 힘은 참으로 놀랍고도 위대하다.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시절, 주변 엄마들은 만나기만 하면 어김없이 뭐 해먹고 사냐는 인사를 주고받으며 집밥에 대한 고역을 토로하곤 했다. 외식도 할 수 없는 그때에 주부들은 너나없이 비명을 질렀다. 나 역시 마찬가지여서 한동안은 김훈의 산문 <밥벌이의 지겨움>이 밥을 지을 때마다 떠올랐다.

"밥에는 대책이 없다. 한두 끼를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죽는 날까지 때가 되면 반드시 먹어야 한다. 이것이 밥이다. 이것이 진저리 나는 밥이라는 것이다."

작가 김훈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으로서의 고역에 대해 토로한 글은 밥 짓는 일이 괴로운 주부 입장에서는 영락없이 '밥 짓기의 지겨움'으로만 읽혔다. 그런데 그때만큼은 아니더라도 요즘도 종종 뭐 해먹고 사느냐는 질문을 받곤 한다. 이번에는 전염병 때문이 아니라 외식비 부담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 참가격이 발표한 외식비 가격동향에 따르면 외식비는 코로나 이후 꾸준한 상승세를 보였다. 조사한 8개 품목(김밥, 자장면, 칼국수, 냉면, 삼겹살, 삼계탕, 비빔밥, 김치찌개백반) 중 현재 오르지 않은 품목은 단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그나마 저렴했던 자장면마저도 22년도 대비 20%도 넘게 올랐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식구가 많은 집들은 외식 자체가 가계에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 주부들이 다시 앞치마를 동여매는 이유다.

밥상에 둘러앉아 오순도순 맛있는 식사를 하는 풍경은 예나 지금이나 정겹기 그지없다. 하지만 밥상은 도깨비가 방망이를 휘둘러 차리듯 뚝딱 차려지지 않는다. 밥상을 차리기 위해서는 재료를 장만해야 하고, 장만한 재료를 다듬고 씻어야 하며, 그것을 볶거나 굽거나 삶거나 찌는 조리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그 과정은 가족이 각자 흩어져 살지 않는 한 무한하게 반복되는 여정이다. 그런 점에서 가족을 먹이기 위해 밥을 짓는 일은 주부에게는 숙명과도 같은 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무리 외식 문화가 발달하고 배달음식이 다양해져도 집밥을 짓는 주부의 손길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365일 매끼를 외식으로 해결할 수도 없을 뿐더러 저렴한 가격으로 건강한 식단을 차릴 수 있는 방법이 아직까지는 집밥이 유일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사회적으로 무언가 성취해 낸 이들이 대단해 보였다. 그런데 지금은 가족을 위해 묵묵히 자기 할 일을 해내는 이들이 대단해 보인다. 사랑의 힘이 아니고서는 그 일을 해낼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을 좇아 밥을 짓는다. 내일도 여전히 그럴 것이다.  

태그:#집밥, #한국소비자원참가격, #외식비가격동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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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하고 아름다운 나무 같은 사람이기를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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