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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군에는 1004개의 섬이 있다. 1004는 날개 달린 천사다. 신안군은 천사 조각상 1004개를 세우고 있다. 섬 하나에 천사가 하나다. 그 섬들에 가면 생명이 꿈틀대고 역사가 흐르며 자연이 숨 쉬고 낭만이 넘실댄다. 미래의 역사·문화·환경 자원으로 각광 받는 신안 1004섬. 그 매력을 새롭게 만나는 연중기획을 시작한다. 황호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와 이광표 서원대 교수가 매주 1회 집필한다.[기자말]
지난 2019년 4월, 신안군의 압해도와 암태도를 잇는 천사대교가 개통되었다. 길이가 무려 7.2km에 이르는 데다 현수교와 사장교가 연결된 참신하고 세련된 디자인으로 금세 신안의 명물이자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천사대교 덕분에 목포에서 신안으로 접근하는 것이 매우 수월해졌다. 여전히 배를 타야만 갈 수 있는 섬이 훨씬 많지만 천사대교는 섬의 고장 신안의 중요한 길이 되었다.

우리는 신안으로 간다

신안엔 섬과 바다가 어우러진 멋진 풍광이 있다. 기암괴석의 비경이 있고 갯벌이 있고 천일염이 있다. 홍어와 병어 같은 생선이 있고 맛깔나는 먹거리가 즐비하다. 최근엔 특히 신안군이 꽃과 뮤지엄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여 다채로운 꽃과 문화예술의 향취가 함께 한다.

색깔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컬러 마케팅, 꽃과 나무로 지역을 재생하는 그린 마케팅, 예술로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는 아트 마케팅이라 할 수 있다(김병희·김신동·홍경수, <보랏빛 섬이 온다>). 최근 사람들이 자꾸만 신안으로 향하는 까닭이다. 
 
신안군 압해도와 암태도를 연결하는 천사대교의 야경. 길이 7.2km로, 신안의 새로운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 신안군
   
신안 만재도 선착장에 들어오는 남해고속 쾌속선 뉴퀸호, 목포와 만재도를 오가는데 편도 5시간30분 걸리던 시간이 이 쾌속선 덕분에 2시간 30분으로 줄어들었다. ⓒ 이광표
 
그런데 여기에 역사와 사람이 빠질 수 없다. 신안의 섬에는 신석기시대 때부터 사람들이 살았다. 고대 시대가 되면 강력한 해상세력이 터를 잡았다.

왕건에 맞섰던 능창이라는 인물이 대표적이다. 장산도 신의도 안좌도 등지에 남아 있는 석실 고분이 고대 해상세력의 흔적이다. 고려시대엔 송나라 사절단이 흑산도 비금도 임자도를 경유해 개경을 오갔고, 원나라 무역선이 증도 앞바다에서 침몰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엔 프랑스 난파선이 비금도에 표착해 프랑스 선원들이 비금도 주민들과 교류를 하기도 했다. 조선시대엔 숱한 인물들이 이곳에서 유배생활을 했고, 근대기엔 암태도 주민들이 소작쟁의 투쟁에 참여해 승리를 쟁취했다. 신안의 섬들이 한반도 서남단의 요충지이다보니, 일제의 침략과 수탈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그 삶의 흔적은 신안의 섬 곳곳에 남아 신안의 역사가 되었다.
 
백제 해상세력의 무덤인 장산도 석실고분. ⓒ 신안군
 
섬의 길, 신안의 길

바다로 둘러싸인 섬은 소통과 고립의 양면을 지닌다. 섬은 바다를 건너는 통로이기도 하고 바다에 갇힌 탓에 단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대체적으로 고립으로 보는 관점이 많았다. 하지만 인류는 섬과 바다를 길로 만들었고, 그 섬과 바다에서 문명의 교류가 이뤄졌다. 신안의 섬들도 예외일 수는 없다.

신안군은 섬의 길 프로젝트를 멋지게 기획해 성공을 거두었다. 바로 '섬티아고 순례길'이다.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를 잇는 12km 둘레길에 12사도의 공간을 조성했다. 바닷물에 잠겼다 드러나는 노둣길은 신비롭게 다가온다. 그래서일까.

섬티아고 순례길은 이제 특정 종교나 단순 관광의 차원을 넘어 자신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코스로 자리 잡았다. 섬과 바다의 아름다운 풍광은 물론이고, 섬에 담긴 지난한 역사와 섬사람들의 애환까지 돌아보게 한다. 그렇기에 섬티아고 순례길은 신안에서만 만날 수 있는 특별한 길이다.

신석기시대 때부터 사람들이 살았으니, 1000여 개의 섬에는 숱한 길들이 새겨져 있을 것이다. 열심히 정성껏 그 길을 들추어내면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팔금도의 충무공 이순신과 시인 최하림, 흑산도의 유배객 정약전 조희룡과 항일민족지사 최익현, 우이도의 홍어장수 문순득, 암태도에서 소작쟁의 횃블을 든 서태석, 비금도의 염부 박삼만과 프로바둑기사 이세돌, 안좌도의 화가 김환기, 하의도의 대통령 김대중, 선도의 수선화 할머니 현복순…. 이들은 모두 자신의 길을 걸었고 아름다운 흔적을 남겼다. 그것이 신안의 길이고 신안 인문학의 요체가 될 것이다.
 
신안군 증도와 화도를 연결하는 노두길. ⓒ 신안군
  
신안군은 흑산도의 흑산성당에서 사리마을까지 정약전의 길을 조성하고 있다. 그 길에서 우리는 유배객 정약전의 고뇌와 그리움, 바다생물에 대한 호기심과 창대와의 우정을 느낄 수 있다. 아울러 아직 덜 알려진 흔적에 대해서도 좀 더 각별한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이순신은 명량대첩 이후 잠시 팔금도에 머물며 조선의 수군을 정비하고 있었다. 그때 둘째 아들의 전사 소식을 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 충격이 어떠했을까. 위대한 장군이 아니라 아버지로서 가장 큰 고통을 겪어야 했던 시절, 이순신은 팔금도 채일봉을 오르내리며 마음을 추스렸으니, 이순신의 일생에서 가장 힘겨웠던 흔적이 팔금도에 남아 있을 것이다. 그 길을 제대로 걷고 싶다.

'이순신의 길'을 더욱 감동적으로 체감하기 위해선 1598년 팔금도에서의 이순신의 동선을 좀 더 구체화하려는 시도가 필요해 보인다. 김대중의 길, 김환기의 길, 이세돌 길 등 신안 사람들의 흔적을 길이라는 관점에서 시각적으로 재구성하면 좋을 듯하다. 그 콘텐츠를 더욱 심화 연구하고 추가 발굴해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테마별 길 프로젝트도 필요해 보인다. 1123년 중국 송나라 사신단 200여 명은 흑산도 비금도 임자도를 거쳐 개경에 이르렀다. 당시 고려를 다녀간 송나라 서긍은 그 과정을 <고려도경>이라는 책에 잘 기록해 놓았다.

1851년 프랑스 고래잡이 어선이 비금도에 표착한 것은 한국과 프랑스의 첫 공식적인 만남이었다. 신안의 섬들은 이렇게 고려와 조선시대 외교와 교류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공간이었다. <고려도경>의 길이기도 하고 한-프랑스 교류의 길이기도 하다. 14세기 초 신안 증도 앞바다에 침몰한 원나라 무역선(신안선)의 이야기도 빠질 수 없는 신안의 길이다.

길은 사람에 국한되지 않는다. 소금의 길도 있고 홍어의 길, 병어의 길도 있다. 이러한 길을 프로젝트화하기 위해선 해당 아이템(인물, 사건, 시대)에 대한 심층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지금까지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새로운 연구성과를 추가하고 창의적인 관점을 가미한다면 흥미롭고 의미있는 '신안의 길 콘텐츠'가 축적될 수 있지 않을까. 신안하면 천일염이다. 그 천일염 소금의 길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위해선 증도 태평염전 앞 바닷가에 가라앉아 있는 소금 운반선의 발굴 조사가 필요해 보인다. 이것을 통해 소금의 유통에 관한 흥미로운 자료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신안은 '1도(島) 1뮤지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그 성과에 힘입어 신안의 여러 섬에서 특징적인 뮤지엄(박물관 미술관)을 만날 수 있다, 이제는 그 뮤지엄을 길로 연결시켰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뮤지엄 각각의 개별 프로그램도 좋지만 섬과 섬들의 차이와 공통점을 찾아내 연계하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섬티아고 순례길 못지않은 뮤지엄 순례길도 가능할 것이다.
 
'걸어서 섬 건너고 싶다'는 한 할머니의 소망이 만들어낸 길

섬과 섬을 잇는 길과 길. 물리적인 길도 있고 추상적 정신적인 길도 있겠지만 이를 위해선 인문학적 탐구가 필수적이다. 강봉룡 목포대 교수는 〈섬의 인문학 담론〉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제안한 바 있다.

"섬과 바다에 작동한 소통성과 고립성, 탈경계와 경계, 섬 문명과 섬 민속의 무성한 교차는, 예술적 행위와 철학적 사유의 스파크를 일으키며 섬사람들의 예술과 철학의 정수와 정신을 발현시켜 왔다. 섬은 수많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창출하여 문학과 스토리텔링과 문화콘텐츠의 진귀한 소재들을 제공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바닷물로 둘러싸여 있는 섬의 독특한 자연경관은, 육지 중심주의가 초래하는 인간 소외의 낭패감을 치유해주는 건강한 문화생태의 원천으로 작동하기도 한다. '섬의 인문학'은 이 모든 것을 아우르고 융합할 것을 제안한다."


섬의 인문학을 가장 멋지게 꽃피울 수 있는 곳은 신안이다. 신안의 무수한 섬들이 김환기 추상화의 점이 되어 인간과 별과 우주로 나아갔듯, 신안의 섬들은 멋진 길이 되어 의미 있는 삶의 무늬(인문)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것은 곧 효율적인 문화관광자원이기도 하다.
 
보랏빛 라벤더가 가득한 신안의 퍼플섬(반월도 박지도). ⓒ 신안군
 
5월 17일부터 26일까지 신안의 퍼플섬(반월도와 박지도)에서 라벤더 축제가 열린다. 수많은 사람들이 안좌도 두리마을~박지도~반월도를 이어주는 해상목교 퍼플교(1.5km)를 걷는다. 보랏빛 라벤더에 취해 바다를 걸어 섬을 건너는 이색적인 경험이다.

퍼플교는 박지마을에서 평생 살아온 김매금 할머니의 '걸어서 섬을 건너고 싶다'는 소망에서 시작되었다. 그 작은 소망은 보랏빛 길이 되었다.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서남해 섬과 유배문화》, 2011
김병희·김신동·김병수, 《보랏빛 섬이 온다》, 학지사, 2022
김재은, 〈전남 신안군 증도와 신의도의 천일염전과 생태문화자원 활용에 대한 연구〉, 《한국도서연구》 58호, 한국도서(섬)학회, 2017
김준, 《섬문화답사기 신안편》, 서책, 2021
이주열, 〈'천사의 섬' 빛나는 해양문화유산-신안군 근대역사문화〉, 《월간 전남매일》 2021년 2월호, 전남매일
채지선‧전형연, 〈섬 지역의 음식문화 커뮤니케이션 전략 연구〉, 《도서문화》 제61집, 목포대 도서문화연구원, 2023
최성환 외, 《섬 공간의 탈경계성과 문화교류》, 민속원, 2015

태그:#신안, #섬의길, #신안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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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에서 문화부 기자, 정책사회부장, 오피니언팀장, 논설위원 등으로 일했고 현재 서원대학교 휴머니티교양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대중들이 문화유산과 예술을 어떻게 인식하고 수용하고 향유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 탐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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